한사군은 한반도 내에 있지 않았다.
우리가 초등학교때 외웟던 한사군은 모두 한반도 내에 있었습니다.
이병도씨가 쓴 [조선사대관](동지사 1948)에 나오는 내용이죠,
그리고 한사군의 중심인 낙랑군은 평양지역에 있다고 하죠,
낙랑군의 위치는 고조선사에서 가장 중요한 키워드 중 하나 입니다.
그런데 낙랑군의 위치를 알수있게 하는 아주 중요한 단서가 [사기]{태강지리}에 나옵니다.
"낙랑군 수성현에 갈석산이 있는데, 장성이 시작되는 지점이다"라는 구절입니다.
따라서 수성현과 갈석산이 어딘가를 찾으면 낙랑군의 위치를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병도씨는 [한국 고대사 연구]에서 수성에 대해 "맹랑하지만 황해도 수안에 비정하고 싶다"라고 써놨어요. 자기 자신도 그 글에다가 "맹랑하지만'이라 써놨어요. 그리고 그 근거는 뭐냐? "수"자가 같기 때문이라는거죠. 중국 지명에서 "수"자가 같은 지역을 찾으면 백개 이상 나옵니다. 그리고 갈석산이 있어야죠. 근데 없으니까 그냥 근처에 산 하나를 "저것을 갈석산이라고 했을것이다"라고 했어요. 그렇게 해서 황해도 수안이 수성현이 됐고장성(만리장성)이 여기서 시작 됐다는 것입니다. 그러다 보니까 요새 중국 박물관에 가면 만리장성이 한반도 황해도까지 내려와 있습니다. 그 이론 제공을 우리 사학계가 한 겁니다.
그럼 실제로 수성현과 갈석산은 어디냐? 중국 하북성 창려현에 가보면 갈석산이 있습니다.
그 지역은 바로 만리장성의 동쪽 끝인 산해관하고 아주 가까운 지역입니다.
또 수서에보면 "수성현이 현제의 창려현'이라는 구절이 나와 있습니다.
모든 부분이 다 맞아 떨어집니다.
또하나의 근거로 수나라 양제가 고구려 평양성을 침공할때 좌군 12군, 우군 12군을 나눠서 진격로를 제시해 줍니다. 그 진격로에 이 사군 이름이 거의 다 나옵니다. 낙랑이 평양에 있다고 하면 수양제가 북경 북부 탁현에서 24군을 출발 시키면서 "너는 낙랑을 거쳐서 낙랑으로 와라"고 하는 셈이 됩니다. 공수부대라면 모를까 앞뒤가 안맞는 애기죠. 결론적으로 중국 고대 기록을 봐도 낙랑군 지역은 현제의 하북성 창려현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한사군이라는 것은 난하 근처 산해관 일대, 고조선 서족 끝자락에 일부 형식적으로 만들었을 수는 있지만ㅁ 한나라가 고조선의 영토를 거의 차지하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종합해 볼때 고조선과 한나라와의 전쟁은 외형상 중국이 이겼다는 형태를 취했지만, 고조선은 전쟁에 져서 무너졌다기 보다는 지배층이 분열하면서 자체 붕괘 됐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이덕일 한가람 역사문화 연구소장 초청 고조선 특강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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