졸본부여(후북부여)
5세 고두막한~ 7세 고주몽(BCE 58~ )
서압록인고두막한이 창의흥병하야 역칭단군하시고
西鴨綠人高豆莫汗이 倡義興兵하야 亦稱檀君하시고
을미한소시에 진거부여고도하야
乙未漢昭時에 進據夫餘故都하야
칭국동명하시니 시내신라고양야라.[삼성기 상]
稱國東明하시니
是乃新羅故壤也라.[삼성기 上]
서압록 사람 고두막한이 의병을 일으켜 또한 단군이라 칭하였다.
을미(BCE 86)년 한나라 소제때 고두막한이 부여의 옛 서울을 점령하고,
이름을 동명이라 칭하니, 이곳은 내내 신라의 땅이다.
한무제는 위만조선을 무너뜨린 후 이에 그치지 않고 다음해에 요동 너머의 북부여를 침공 하였다. 이때 서압록 출신의 고두막한이 의병을 모아 거세게 저항하여 마침내 한족을 물리치니 한무제의 동방 원정은 참담한 실패로 끝나고 말았다.
고두막한 장군은 졸본(현 흑룡강성 유분하시)에서 스스로 동명제東明帝라 칭하고 나라를 동부여라 하였다. 이 국호는 20년 후인 BC 86년 민심을 얻은 동명왕이 북쪽에 있던 북부여를 통합할 때까지 지속되었다. 동명왕은 북부여 5대 단군으로 즉위 하면서 북부여라는 국호를 그대로 계승하였다. 그러므로 동명왕은 당시 한민족의 침략에 맞서 나라를 구하여 한민족의 국통맥을 이어온 북부여가 존속될수 있게한 구국 영웅이었다.
이후 북부여는 6대 단군 고무서의 사위가 되어 7대 단군으로 등극한 고주몽 성제가 BC 58년에 고구려라는 국호를 채택 함으로써 180년 동안 지켜오던 국통맥을 고구려에 넘겨 줌으로써 그 명을 마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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