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민족의 역사찾기

한민족 지배를 위한 일본의 식민 정책과 이마니시류의 상고사 조작극.

한민족 지배를 위한 일본의 식민 정책과 이마니시류의 상고사 조작극.

 

역사학자 토인비가 말하기를 "어떤 민족을 멸망시키기 위해서는 그 나라의 역사를 말살하라는 것이 식민주의자들의 철학이다"고 말하였습니다.

서기 1910년 일본이 조선을 강제로 합병한 직후, 조선총독부 초대 총독으로 부임한 테라우치 마사타게는 불온 서적을 수색 한다며 군과 경찰을 동원하여 마치 군사 작전을 하듯이 전국 각지에서 20만권의 사서를 강탈하여 소각 하였다.

그러나 일제는 항구적인 식민지배를 위해 치밀하고 조직적인 역사 왜곡 정책을 세우게 된다.

이마니시류는 삼국유사 정덕본의 석유환국(昔有桓國)의 국(國)자를 인(因)자로 석유환인(昔有桓因)으로 조작하고 이것을 삼국유사 경도제대 영인본으로 배포하였으며 즉 "옛적에 환국이 있었다."는 내용을 "옛적에 환인이 있었다."로 바꾸어 버림으로써 한 국가의 실존 역사를 한 인물의 신화로 뒤집어 버린 것이다.[昔有桓因]

한반도 북부를 중국 식민지로 만든 그는 황국사관으로 날조한 일본서기 기록과 사카와 중위가 조작한 광개토대왕 비문 내용을 끌어드려 일본이 임나일본부를 두고 한반도 남부를 식민 지배 했다고 주장 했다.

이것이 남선경영(南鮮經營)의 논리다.[임나일본부설]

 

조선 총독부 3대 총독 사이토 마코토가 하달한 문화통치 교육시책을 보면 

1, 먼저 그 사람들이 자기의 일과 역사와 전통을 알지 못하게 만들어 그 민족혼과 민족화를 상실하게 만들고

2, 다음 그 모든 선인들의 무위와 무능, 악행등을 들춰내어 그것을 과장하여 가르침으로써 조선인 청소년들이 부모와 조상들을 격멸시하는 감정을 이르키도록 유발하며,

3, 그리하여 그것이 점차 자아 혐오증으로 발전하게 함이 가장 효과저긴 것이다. 이미 배움에 갈증이 심한 청소년들이 자국의 모든 인물과 사적에 관하여 왜곡된 지식을 얻어 경멸적 혐오증에 걸리게 되면 그들은 반드시 실망과 허무감에 빠질것이니, 그러한 때에 장식 미화 과장된 일본사적, 일본인물, 일본문화들을 소개하면 그 주입 효과가 클것이다. 제국 일본이 조선인을 반 일본인으로 만드는 요결과 첩경이 실로 여기에 있는 것이다.

 

아직도 일본의 만행은 끝나지 않고 있으며 일본의 역사 교과서에는 극우단체가 침략사관으로 왜곡한 역사 교과서를 국가 검정 교과서로 채택하여, 4세기 후반부터 200년동안 한반도 남부를 식민지배 했다는 임나일본부설을 역사의 진실인 양 가르치고 있다.

고이즈미 전 일본 총리는 후꾸오카의 법원이 내린 위헌 판결도 무시하고 야스쿠니 신사 참배를 강행 하였으며,

아직도 침략 근성을 버리지 못하고 1998년과 2002년11월 첨단무기로 무장한 자위대 병력을 동원하여 동경도東京都 남쪽 해상에 있는 이오시마에서 독도 점령 훈련을 실시 하였으며, 국정 교과서에 독도를 일본 땅으로 공표했다. 아직도 독도 문제를 가지고 일본 땅이라고 주장하고 있는 현실이다.

 

그럼 일본 고대사의 진실은 무었인가? 일본은 한반도로 부터 모든 문화를 유입 하였으며, 주로 수렵과 채집에 의존하던 일본은 BC 4세기 경에 한반도로 부터 벼농사와 천동기 문화를 가진 사람들의 일본 이주로 농업 혁명을 이루었으며, AD 4-5세기에 열도내에 흐터져 있던 여러 부족사회는 기마병과 철제무기를 앞세운 한반도 군사 집단에 의해 독립국가를 수립한 것이며. AD 6세기경 서기 538년 백제가 전해준 불교는 일본 열도내 종교 혁명을 야기하였으며 "고대 일본국은 한국의 문화를 수용함으로서 고대 국가를 건설할수 있었으며 한국은 일본의 은인의 나라이자 선생의 나라다(소화천황 재위 1926~1989) 

 

일본의 건국 신화는 천신을 시조로 삼고 천손강림을 골자로 하며,그중에는 "자신들의 조상이 고향에서 멀리 떠나 거북(또는 상어)의 도움으로 큰 강(또는 바다)을 건넜으며, 마침내 새로운 땅에 나라를 세웠다."는 내용도있다. 이는 고구려나 백제와 같은 부여계의 건국 신화를 그대로 반영하고 있는 것으로, 현제 일본인의 원류가 대륙으로부터 한반도를 거쳐 일본열도로 흘러 들어 갔음을 쉽게 추측 할수 있다. 

 

일본 아키히토(明仁)황이 "옛 칸무(재위 781~806)천황의 생모가 백제 무령왕의 자손이라고 속일본기(續日本紀)에 기록되어 있어 한국과의 인연을 느낀다."고 말한것이 화제다.

어떤 의도에서 이같이 발언을 했는지 의견이 분분하지만 일본 황실이 백제와의 혈연적 관계에 대해 처음으로 언급 했다는 점에서 파장이 적지 않으며, 고대 한반도인 일본 열도에 이주하고 그곳에 선진 문물을 전파해준 것은 부정할수 없는 역사적 사실이어서 한일 고대 사학계에서는 천황과 백제 사이의 관련설이 끈임없이 제기되어 왔다.(출처:2001년 12월 24일 동아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