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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후

가섭원부여(동부여) 가섭원부여(동부여) 1세 해부루~3대 대소(BCE 86~CE 22) 을미이십삼년이라 乙未二十三年이라 북부여가 거성읍항하고 루애욕보어늘 北夫餘가 擧城邑降하고 屢哀浴保어늘 제청지하고 항봉해부루위후하고 천지차릉하시다.[북부여기] 帝聽之하고 降封解夫婁爲侯하고 遷之岔陵하시다.[북부여기] 재위 23년 을미乙未(BCE 86)년 북부여가 성읍을 바쳐서 항복하고, 왕실만은 보존시켜 주기를 여러번 애원 하는지라 고두막 단군께서 들어 주시어 해부루解夫婁의 봉작을 낮추어 제후로 삼아 차릉解夫婁으로 이주해 살도록 하셨다. 동명왕은 당시 북부여 황실의 해부루 단군을 죽이지 않고 살려주어 동북쪽 가섭원(길림성 롱화현) 땅의 제후로 봉하였다. 이리하여 BCE 68년에 가섭원 부여가 탄생하였다. 이것이 [삼국사기]와 [삼국유사]에 나.. 더보기
고조선과 한나라 전쟁의 진실 고조선과 한나라 전쟁의 진실 우리나라 주류 학설에 따르면 고조선의 강역은 평안도 일대에 걸쳐있는 작은 나라에 불과 합니다. 그런데 고조선과 한나라와의 전쟁에 대한 기록들을 면밀히 살펴보면 상당히 의문스러운 구절들이 많습니다. [한서]에 따르면 조한 전쟁은 고조선이 한나라에 조공을 바치러 가는 여러 나라를 못가게 막았기 때문에 전쟁이 시작 됏다고 합니다. 그러면 고조선이 평안북도에 위치해 있었다면 무슨 재주로 만주나 북방에 있는 다른 민족들을 막겟습니까? 전제 자체가 틀린 것입니다. 그리고 저하고 연배가 같으신 분들은 아마 초등학교때 '한사군"이라 해서 "낙랑, 임번, 진둔, 현도"라는 이름을 달달 외우고 위치까지 외워야 햇던 것을 기억 하실 겁니다. 그런데 지금 생각해보면 설령 그것이 사실이라 할지라도 ..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