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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총독부

국보, 보물, 사적, 등 일련번호 80여년만에 폐지 추진 국보, 보물, 사적, 등 일련번호 80여년만에 폐지 추진 국보번호 폐지 논란을 불러온 국보 1호 숭례문. 일제에 의해 국보 1호로 지정된 숭례문은 2008년 방화사건 이후 다시 지어졌지만 부실복구 시비에 휩싸였다. 일제는 1933년 우리나라 국보(당시 명칭 보물)를 효율적으로 관리한다는 명목으로 일련번호를 부여했으며, 국보는 6·25전쟁 직후인 1955년 북한 소재 문화재를 제외하는 등 목록이 한 차례 정비되고 1962년 제정 공포된 문화재보호법에 따라 그 숫자가 추가됐지만, ‘국보 1호’ 숭례문으로 시작되는 번호 체계의 기본 틀은 일제강점기 것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했다. 문화재청이 국보에 붙여진 이 일련번호를 전면 해제하는 것을 전제로 국보의 번호 체계를 대대적으로 재조정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나.. 더보기
한민족 지배를 위한 일본의 식민 정책과 이마니시류의 상고사 조작극. 한민족 지배를 위한 일본의 식민 정책과 이마니시류의 상고사 조작극. 역사학자 토인비가 말하기를 "어떤 민족을 멸망시키기 위해서는 그 나라의 역사를 말살하라는 것이 식민주의자들의 철학이다"고 말하였습니다. 서기 1910년 일본이 조선을 강제로 합병한 직후, 조선총독부 초대 총독으로 부임한 테라우치 마사타게는 불온 서적을 수색 한다며 군과 경찰을 동원하여 마치 군사 작전을 하듯이 전국 각지에서 20만권의 사서를 강탈하여 소각 하였다. 그러나 일제는 항구적인 식민지배를 위해 치밀하고 조직적인 역사 왜곡 정책을 세우게 된다. 이마니시류는 삼국유사 정덕본의 석유환국(昔有桓國)의 국(國)자를 인(因)자로 석유환인(昔有桓因)으로 조작하고 이것을 삼국유사 경도제대 영인본으로 배포하였으며 즉 "옛적에 환국이 있었다."는..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