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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의 역사찾기

낙랑국樂浪國과 낙랑군樂浪郡, 한사군의 진실

낙랑국樂浪國과 낙랑군樂浪郡, 한사군의 진실

 

낙랑은 위만이 다스렸던 왕험성(번조선 말기의 수도로 지금의 하북성 창려)지역이다.

사대 식민주의 사학자들이 "낙랑국樂浪國과 낙랑군樂浪郡을 구별하지 못하고 하북성에 있던 낙랑을 지금의 청천강 이남에서 자비령 이북으로 비정하여 한반도 내로 끌어들였다.

본래 평양 일대에 있었던 낙랑은 고조선 삼한중 번한의 유민 최승이 세운 최씨 낙랑국이며 낙랑군이 아니다.

 

낙랑군이 대동강 평양지역에 있었다는 것을 부인하는 설은 신채호의 [조선사연구초] 정인보의 [한사군정무론] 이유립의 [역사로 본 우리 국토] 문정창의 [한국고대사] 임승국의 [한국정사] 박시인의 [알타이 인문연구]

유내현의 {한국고대사신론]등이다.<상생출판 [단군세기]>

 

 

북부여의 제후국, 낙랑국 BC195년에 낙랑왕 최승이 번조선의 난하 유역(낙랑산)에서 막조선의 왕검성(현제 평양의 대동강 유역)으로 이주하였다. 낙랑왕 최승이 한반도 전역에 자리 잡았던 막조선의 수도로 가게 된것은 북부여의 해모수 단군의 설득 때문이었다. 최승은 진조선의 오가공화제가 해체되면서 막조선에도 마자막 35세 단군 맹남을 끝으로 망하게 되자 막대한 재물을 갖고서 막조선의 도읍지인 대동강 부근으로 이주하여 이곳을 낙랑국의 새 도읍지로 삼았다.

한무제가 설치하였다는 낙랑군은 대동강이 아니라 난하 하류의 갈석산 부근에 위치하였다.

대동강 유역에 있던 국가는 한사군의 하나인 낙랑군이 아니라 북부여의 제후국인 낙랑국이었으며 낙랑군은 한반도 안에 있지 않았던 것이다. 즉 낙랑군은 북부여와 가까운 만주지역에, 낙랑국은 대동강 유역에 그 중심지가 있다<상생출판 [북부여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