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나부부여(서부여)
1세 대소왕의 종제~7세 의라왕(CE 22~494)
추칠월에 왕종제가 위국인왈 선왕이 신시국망하야
秋七月에 王從弟가 謂國人曰 先王이 身弑國亡하야
인민이 무소의하고 갈사는 편안하야 불능자국하고
人民이 無所依하고 葛思는 偏安하야 不能自國하고
오역재지노하하야 무망흥복하니 영항이도존이라하고
吾亦才智魯下하야 無望興復하니 寧降以圖存이라하고
이고도인민만여구로 투고구려한대 고구려가 봉위왕하사
以故都人民萬餘口로 投高句麗한대 高句麗가 封爲王하사
안치연나부하시고 이기배에 유낙문하야 사성낙씨러시니
安置椽那部하시고 以其背에 有絡文하야 賜姓絡氏러시니
후에 초자립하야 자개원서북으로 사도백랑곡하고
後에 稍自立하야 自開原西北으로 徙到白狼谷하고
우근연지지러니 지문자열제명치갑술하야 이기국으로
又近燕之地러니 至文咨烈帝明治甲戌하야 以其國으로
절입우고구려하니 연나부 낙씨가 수불사하니라.
折入于高句麗하니 椽那部 絡氏가 遂不祀하니라.
<역주>이해 가을 7월에 대소왕의 종제從弟가 백성에게 일러 말하기를 "우리 선왕先王께서 시해를 당하시고 나라는 망하여 백성이 의지할 곳이 없고, 갈사국은 한쪽에 치우쳐 있어 안락하기는 하나 스스로 나라를 이루기 어렵도다. 나 또한 재주와 지혜가 부족하여 나라를 다시 일으킬 가망이 없으니 차라리 항복하여 살기를 도모하자"라고 하였다. 드디어 옛 도읍의 백성 1만여명과 함께 고구려에 투항하니, 고구려에서는 그를 왕으로 봉하여 연나부椽那部에 살게 하였다. 또 그의 등에 띠 같은 무늬가 있어 낙씨絡氏성을 내려 주었다. 그후에 차츰 자립하여 개원開原 서북에서 백랑산白狼山 계곡으로 옮겨 갔는데 연燕나라와 가까운 곳이었다. 고구려 21세 문자열제文咨烈帝 명치明治 갑술甲戌 (환기 7691, 신시개천 4391, 단기 2827, CE494)년에 이르러 나라가 고구려에 굴복하여 들어가니 연나부의 낙씨는 마침내 망했다.
대소왕의 종제는 고구려에 백성들과 투항하였고, 고구려는 왕으로 삼아 연나부에 살게 하였다, 낙씨성을 하사 받았다. 6세 의려왕은 개원에서 연나라와 가까운 백랑산으로 옮겼는데, 선비 모용씨의 침략을 받아 아들 의라에게 넘기고 일본으로 보망하여 나라를 세웠다. 7세 의라왕은 모용씨의 침략으로 나라가 망하고 일본으로 도망가서 일본 최초의 통일 왕조인 야마토 왜를 세운 응신천황應神天皇이 되었다.
[환단고기] [대진국본기] 에는 의려국 왕의 이야기가 나온다. 의려국은 앞에서 언급한 연나부부여를 말한다. 의려왕에게서 나라를 물려받은 아들 의라왕이 중국 동진의 도움으로 나라를 재건 하였으나 거듭되는 모용씨의 침략을 견디지 못하고 수천명의 사람들을 이끌고 바다를 건너 일본을 평정하여 그 왕이 되었다고 한다. 그가 바로 15대 응신천황應神天皇이라는 것이다. 일본으로 도망하여 야마토정권(370년)을 세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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