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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의 역사찾기

낙랑국樂浪國과 낙랑군樂浪郡, 한사군의 진실 낙랑국樂浪國과 낙랑군樂浪郡, 한사군의 진실 낙랑은 위만이 다스렸던 왕험성(번조선 말기의 수도로 지금의 하북성 창려)지역이다. 사대 식민주의 사학자들이 "낙랑국樂浪國과 낙랑군樂浪郡을 구별하지 못하고 하북성에 있던 낙랑을 지금의 청천강 이남에서 자비령 이북으로 비정하여 한반도 내로 끌어들였다. 본래 평양 일대에 있었던 낙랑은 고조선 삼한중 번한의 유민 최승이 세운 최씨 낙랑국이며 낙랑군이 아니다. 낙랑군이 대동강 평양지역에 있었다는 것을 부인하는 설은 신채호의 [조선사연구초] 정인보의 [한사군정무론] 이유립의 [역사로 본 우리 국토] 문정창의 [한국고대사] 임승국의 [한국정사] 박시인의 [알타이 인문연구] 유내현의 {한국고대사신론]등이다. 북부여의 제후국, 낙랑국 BC195년에 낙랑왕 최승이 번조선의 난하 .. 더보기
위만 조선의 진실은? 위만 조선의 진실은? 1, 고조선은 왜 망했는가? 오늘의 사가들은 마치 준왕이 고조선의 마지막 왕인 것처럼 가르치고 있다. 머리와 꼬리만 있지 몸통은 없는 역사,(단군세기 참고) 준왕은 고조선의 서쪽 날개였던 번조선의 부단군 이었을 뿐이다 더더욱 진조선의 마지막 제왕인 고열가 단군이 장수들의 거듭된 화란속에 퇴위하여 고조선의 본조시대가 마감된 것은, 잔적 위만이 번조선을 점거하기 44년 전에 일어난 사건이다. 당시 중국은 춘추 전국시대의 혼란기에 처해 있었다. 사실이 그러할진대 당시 한족이 고조선을 위협한다거나 고조선을 찬탈할 여력이 어디 있었겠는가! 요컨대 단군 조선은 지금의 강단 사학이 주장하는 것처럼 중국 한족의 위세에 눌려 망한것이 아니다. 병권을 셋으로 나누어 삼조선이 독자적으로 나라를 경영하게.. 더보기
기자조선의 진실은? 기자조선의 진실은? 21세 소태단군{단군세기] 제순수국중이라가 남지해성하사 대회부로하사 제천가무하시고 잉소오가하사 帝巡狩國中이라가 南至海城하사 大會父老하사 祭天歌舞하시고 仍召五加하사 여지의전위하실새 자위노권우근이라 하시고 욕위정어서우여라 하시니라. 輿之議傳位하실새 自謂老倦于勤이라 하시고 欲委政於徐于餘라 하시니라. 환살수백리이봉지하사 명위섭주하시고 호왈기수라 하시니라. 環薩水白里而封之하사 命爲攝主하시고 號曰奇首라 하시니라. 임금께서 나라를 순수하시다가 남쪽 해성에 이르러 부로들을 크게 모아 하늘에 제사 지내고 노래와 춤을 즐기셨다. 이때 오가를 모아놓고 옥좌를 양위할 일을 함께 의논할때 "내가 이제 늙어 일하기가 고달프다"라고 말씀 하시고 "서우여에게 정사를 맏기겠노라" 하셨다. 이에 살수 주위에 땅 백리.. 더보기
고조선과 일본의 관계 고조선과 일본의 관계 36세 매륵단군[단군세기] 갑인삼십팔년이라 견협야후배반명하사 甲寅三十八年이라 遣陜野後裵幋命하사 왕토해상하니 십이월에 삼도실평하다. 往討海上하니 十二月에 三島悉平하다. 재위 38년 갑인(BCE 667)년 협야후狹野侯 배반명을 보내 해상의 적을 토벌하게 하셨다. 12월에 삼도(일본능 구성하는 세섬, 큐슈, 혼슈, 시코쿠)를 모두 평정하였다. 고대 일본사는 동방 한민족의 이민 개척사를 결코 넘지 않는다. BCE 660년에 즉위한 초대 천왕 신무神武는 고조선 사람이다. [단군세기]와 [태백일사] [삼한관경본기]의 "36세 단군때(BCE 667) 협야후狹野侯 배반명이 왜인의 반란을 평정하였다'는 기록에 등장하는 배반명이 곧 진무천왕이다. 일본의 초대 천왕 즉위사건과 겨우 7년 밖에 차이가 나.. 더보기
간도수는 어떻게 실현되는가 간도수는 어떻게 실현되는가 1. 간도수로 접어드는 역사의 전환점 위만의 찬탈에 의해 고조선의 왼쪽필인 번조선의 준왕이 왕검성에서 쫓겨 나면서(BCE 194) 한민족은 역사적 분기점을 맞게 된다. 삼조선의 유민들 가운데 일부는 해로를 통해 한강 이남으로 내려와 탁장군 탁卓을 진왕辰王[天帝子]으로 세우고, 옛 고조선(삼한)의 정신을 되살려 소규모로 삼한을 재건 하였다. 이것이 우리가 알고있는 남삼한 역사의 시작이다. 가을 개벽의 구심점이자 동방 문명의 원 핵이요, 개벽의 숨구멍인 동북 간방으로 조여 들어온 것이다. 한민족은 본격적인 간도수 실현의 역사 시대를 준비하게 되었다. 고조선이 망하면서 우리 한민족의 역사는 다 망한 것이나 다름없다. 선천 상극의 배은망덕에 의해 역사의 뿌리가 뽑힌채 개벽의 땅으로 쫏.. 더보기
고조선과 한나라 전쟁의 진실 고조선과 한나라 전쟁의 진실 우리나라 주류 학설에 따르면 고조선의 강역은 평안도 일대에 걸쳐있는 작은 나라에 불과 합니다. 그런데 고조선과 한나라와의 전쟁에 대한 기록들을 면밀히 살펴보면 상당히 의문스러운 구절들이 많습니다. [한서]에 따르면 조한 전쟁은 고조선이 한나라에 조공을 바치러 가는 여러 나라를 못가게 막았기 때문에 전쟁이 시작 됏다고 합니다. 그러면 고조선이 평안북도에 위치해 있었다면 무슨 재주로 만주나 북방에 있는 다른 민족들을 막겟습니까? 전제 자체가 틀린 것입니다. 그리고 저하고 연배가 같으신 분들은 아마 초등학교때 '한사군"이라 해서 "낙랑, 임번, 진둔, 현도"라는 이름을 달달 외우고 위치까지 외워야 햇던 것을 기억 하실 겁니다. 그런데 지금 생각해보면 설령 그것이 사실이라 할지라도 .. 더보기
한사군은 한반도 내에 있지 않았다. 한사군은 한반도 내에 있지 않았다. 우리가 초등학교때 외웟던 한사군은 모두 한반도 내에 있었습니다. 이병도씨가 쓴 [조선사대관](동지사 1948)에 나오는 내용이죠, 그리고 한사군의 중심인 낙랑군은 평양지역에 있다고 하죠, 낙랑군의 위치는 고조선사에서 가장 중요한 키워드 중 하나 입니다. 그런데 낙랑군의 위치를 알수있게 하는 아주 중요한 단서가 [사기]{태강지리}에 나옵니다. "낙랑군 수성현에 갈석산이 있는데, 장성이 시작되는 지점이다"라는 구절입니다. 따라서 수성현과 갈석산이 어딘가를 찾으면 낙랑군의 위치를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병도씨는 [한국 고대사 연구]에서 수성에 대해 "맹랑하지만 황해도 수안에 비정하고 싶다"라고 써놨어요. 자기 자신도 그 글에다가 "맹랑하지만'이라 써놨어요. 그리고 그 근.. 더보기
고조선의 청동 검과 중국의 청동검 고조선의 청동검과 중국의 청동검 고조선 시대를 대표하는 유물이 고인돌과 비파형 청동검 입니다. 고인돌은 중국 요녕성에서 부터 우리나라 남쪽 흑산도까지 같은 형식의 고인돌이 분포되어 있습니다. 이는 같은 내세관, 같은 문화권을 가지고 있다는 뜻입니다. 산돈반도에서 한두점 발굴 됐는데, 화하족이라 불리는 중국 민족이 사는 지역에서는 단 한점도 나오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비파형 동검은 고조선식 동검이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우리는 흔히 우리나라의 모든 문명은 중국에서 들어왔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청동기나 철기도 다 중국에서 왔을 것이라는 전제하에서 교과서가 서술 됩니다. 그러면 실제로 그러냐? 청동은 주석과 아연의 합금인데, 우리나라 청동검에는 아연이 상당히 많이 들어 있습니다. 아연은 섭씨 7~8백도.. 더보기
동서문화의 뿌리 신교문화와 삼신 상제님의 의미 동서문화의 뿌리 신교문화와 삼신 상제님의 의미 신교란 한민족 혼의 고향인 동시에 현생 인류 문화의 모태다. 고조선 이전의 상고시대 천산산맥 동방을 중심으로 실존했던 환국과 배달시대 이래로 우리 조상들이 국교로 받들어온 동방 한민족의 생활 문화다. 신교는 [규원사화]의 이신설교以神設敎에서 유래하였다. "신으로 가르침을 베푼다." "신의 가르침을 받아 내린다." "성신(성령)의 가르침으로 다스린다." "신을 모든 인간 생활의 중심으로 삼는다."는 다양한 의미가 있다. 가을 문화라 하는 것은 유형의 물질 문명과 무형의 정신 문화가 하나로 합일되고 인간의 내면에 잠재된 우주적 신성이 드러나 인간과 천지가 온전히 하나되어 살아가는 새로운 가을 신교의 영성시대가 열리는 것이다. 모든 인간이 '대우주의 성령"으로 화.. 더보기
왜곡된 고조선 삼한 역사의 진실 왜곡된 고조선 삼한 역사의 진실 단군 왕검은 고조선을 건국 하시고 환국과 배달 시대의 대도인 신교를 계승하여 신교의 삼신관, 즉 삼신이 품고 있는 광명의 원리를 근본으로 치화의 도를 역사속에 실현하셨다. 단군 왕검은 삼신의 덕성, 즉 조화신造化神, 교화신敎化神, 치화신治化神을 바탕으로 조선을 삼한 , 즉 진한辰韓, 번한番韓, 마한馬韓으로 나누어 통치 하였다. 신교 문화의 삼신 사상이 국가 통치 원리,국가 경영원리로 제도화된 것이다. 이 가운데 고조선 강역의 중앙인 만주에 자리잡은 진한이 삼한의 중심국으로서 단군 왕검이 직접 다스렸다. 그리고 요서와 한반도에 자리 잡았던 번한과 마한은 각기 단군을 보좌하는 부단군이 다스렸다. 진한의 대단군만이 병권을 장악하고, 번한과 마한의 부단군은 대단군의 명을 받들었다.. 더보기